영화 《데블스 에드버킷 The Devil's Advocate》리뷰.



알 파치노와 키아누 리브스가 같이 나온 영화가 있다고 해서 보게 된 영화. 상상도 못 했다. 둘이 같이 나온 영화가 있을 줄이야. 《대부》, 《히트》에서 알 파치노에게 빠졌고, 《매트릭스》, 《스피트》, 《콘스탄틴》에 나오는 키아누 리브스의 배역 모두 좋아하는데 그 둘이 함께 찍은 영화가 있다니. 참고로 《데블스 에드버킷》은 1995년 작품이라  1997년에 나온《매트릭스》보다 이전 작품. 때문에 키아누 리브스 소개에는 《스피드》만 있다.


이 둘이 나왔으니 지구가 종말할 줄 알았는데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감독은 테일러 핵포드인데, 맹인 음악가인 레이 찰스를 다룬 《레이》라는 영화로 그래미 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정작 아카데미 감독상은 지명에 그쳤고, 아카데미와 전미 비평가 협회 등 상을 모조리 휩쓴 사람은 레이 역할을 맡은 제이미 폭스였다. 핵포드가 감독한 영화 중에서는 《백야》와 같은 작품도 있는데, 나는 영화에 문외한이라 잘 몰랐다. 덧붙여서, 《데블스 에드버킷》은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었다.


영화 제목을 직역하면 '악마의 대변인', '악마의 변호사' 정도. 단어의 유래는 카돌릭의 시성 반대 검사에서 출발한다. 로마 카톨릭 교단에서는 누군가를 성자로 추대할 때 그 사람이 정말 적절한 인물인지 공개 질의 절차를 통해 그 사람의 행적을 낱낱이 파헤친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의 청문회와 유사하다. 장관을 임명할 때 국회의원들이 물어뜯는 것처럼 성자 후보자의 사소한 흠까지 지적하는데, 이렇게 지적하는 사람을 Devil's Advocate라고 불렀던 것이다. 단어를 보니 그들이 악마의 편에 서서 성자를 타락시키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현대에서는 일부러 남의 흠을 찾는 사람의 뜻으로 사용된다. 곤란한 질문만 해댈 때 우리나라도 "여기가 무슨 청문회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길게 설명을 하긴 했지만 영화 제목은 중의적이다. 포스터만 봐도 예측이 가능하겠지만(...)



※ 이후 나오는 내용은 영화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주의.



영화 내용은 변호사에 관한 이야기다. 게임《역전재판》처럼 변호사와 검사 간 단순 법정 싸움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이런 모습을 기대했는데...


논리적 법정 공방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법정 장면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에 그치고 논리적인 추론 과정이 나오는 대신 결정적인 해결 부분만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변호사의 진실 의무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법정은 진실을 가려내는 곳이다. 위의 사진 《역전재판》도 진실 밝히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는데, 웬만한 추리 소재 작품들에서는 안경 쓴 꼬마 살인자 코난이 말하는 것처럼 진실은 언제나 단 하나다.


그래서 하나 빼고 다 죽나?


그런데, 진실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추상적이다. 일본 영화 《라쇼몽》이나  일본 소설 《덤불 속으로》를 봤던 사람들이라면 기억하겠지만, 누구든지 자기 입장에서만 사건을 해석하기 때문에, 사건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진실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처럼 진실은 추상적이기 때문에 변호사는 피고의 입장에서, 검사 혹은 다른 변호사는 원고의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하여 진실을 찾는다. 게다가 법정은 논리만이 작용하는 공간이다. 증거와 증인 등을 이용하여 배심원과 판사를 납득시켜야만 이길 수 있다. 변호사는 진실만을 지킬 것을 의무로 하지만 법정 속 진실이라는 것은 도덕적 잣대나 사회적인 정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법정에서 이긴 사람이 진실이고 정의인 것이다.


정의(선)와 악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 데스노트도 참 재밌었지


영화의 중심 소재 중 하나인 배심원 제도는 판사+검사+변호사라는 일종의 특수한 계급적 틀을 깨고 사법체계에 민주적 요소가 확보된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논란 거리가 많다. 배심원 역할을 해보기도 한 리처드 도킨스가 비난하기도 했는데, 배심원단이 매수되거나 협박될 가능성도 있는데다 배심제 자체도 군중심리 등 감정적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는 약점이 존재한다. 찰리 채플린 친자확인 소송이나 O.J. 심슨 사건 등이 비논리적 재판 결과의 대표적인 예. 이런 약점도 있지만 전세계에 배심제가 확산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사회의 보편적 가치관에 입각해서 판결할 수 있기 때문. 우리나라도 최근 배심원 제도를 도입했긴 하지만 1심에서만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항소 시 바뀔 수도 있다. 더욱이 피고인이 요청할 경우에 한하여 배심제 즉 국민참여재판을 사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도현 시인의 재판이나 나꼼수 멤버 김어준과 주진우의 재판에서 활용된 사례가 유명하다. 서구권에서의 배심원 제도는 거의 절대적이다. 판사는 재판을 진행하다가 배심원들이 회의한 결과에 맞춰 망치를 두드릴 뿐이다.


변호사로 나오는 키아누 리브스는 이런 배심제를 적극 활용하여 재판을 승리로 따낸다. 비논리적 판단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호사의 좋은 예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승리하는 변호사가 현실에서도 인기가 있는 것을 보면 뭐... 세계는 그리 논리적이지 않다. 키아누 리브스도 진실을 밝히는 일보다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무패 변호사라는 점과 승리 우선주의가 알 파치노의 마음에 들었는지 리브스는 그의 로펌에 전격 스카웃된다. 이후 영화는 초자연적인 일이 계속 일어나는 과정을 그린다. 나중에 알 파치노의 유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키아누 리브스는 자살을 선택한다. 개인적으로 《콘스탄틴》과 약간 오버랩된다고 느꼈다.


영화에서 자살은 매우 주체적인 행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말 그대로 자살은 매우 주체적이다. 인간이 중력이나 화학 반응 등 신체 외의 도구를 이용하지 않는 스스로 죽기는 매우 어렵다. 스스로 숨을 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혀를 씹어 자살한다는 고전적 방법 역시 추천되는 방법은 아니다. 과다 출혈 때까지 기다리거나 혀가 기도를 막는 상황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의외로 혀가 잘 잘리지 않기 때문에 단번에 절단되지 않는다면 일단 그 날은 고통에 몸부림하느라 운 나쁘게도(?) 자살할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자살이 주체적이라는 것은 확인했다. 실존주의와 자살이 연관되는 일부 의견이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인간은 고통을 명확하게 목도할 때 비로소 스스로의 실존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실존. 안타깝게도 지금 세계는 자살할 이유만 죄다 가득하기 때문에 정말 60세까지 자살하지 않으면 나라에서 훈장과 상금이라도 줘야할 판이다.


마지막에 영화 초반의 사건 장면으로 돌아간 리브스는 아동 성추행 교사를 변호하는 대신 변호를 포기한다. 초반부에서는 아동 성추행 교사가 유죄라는 것을 알고도 배심원의 마음을 움직여 무죄를 받아냈는데, 이제는 승리 대신 내면의 양심에 집중한 것이다. 이후 기자가 양심을 선택한 변호인에 대해 취재하고 싶다고 제안을 한다. 몇 번 거부하던 리브스는 스타가 될 수 있다는 말에 결국 승낙한다. 리브스가 법정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기자는 다시 악마 즉 알 파치노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 부분이 정말 재미있다고 느꼈다. 아주 대단하고 용기있는 행동으로 악마의 유혹을 떨쳐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악마의 유혹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던 것이다.


영화가 법정과 사회적 정의라는 재미있는 주제로 이루어진 줄만 알았는데 변호사의 진실 의무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끝나버려서 마음은 개운했지만 뭔가 조금 맥 빠진 느낌이 든다. 배심원단을 비논리적으로 요리해서 무죄를 받아내는 방식을 택해서 어쩔 수 없었겠지. 정황상 애매한 사건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해서 진실과는 다른 승리를 쟁취했다면 뭔가 더 고차원적인 영화가 되었겠지만 재미는 없었을 지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은 CG가 쓰인 영화 치고 서스펜스나 액션 장면이 적었다는 것이다. 야한 장면이 많이 나왔으니 괜찮아. 그런 장면을 원하는 사람들은 《콘스탄틴》을 보자. 세기말적 지구에서 구원자로 나오는 키아누 리브스가 악마들을 모조리 소탕해주고 마지막에 빅엿도 날려준다.


내용 얘기는 그만하고, 그 외의 이야기를 해 보자. 벽지를 칠하는 장면 전환이 신선했다. 또, 알 파치노가 나와서 그랬는지 일부 장면에서는 대부와 비슷한 몽타주가 나온다. 알 파치노의 작중 이름은 존 밀턴인데 이는 12권이나 되는 종교적 서사시 《실낙원》의 저자 이름에서 기원했다. 알 파치노는 촬영 도중에 실낙원을 읽었다고 한다. 알 파치노가 한국어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영화의 잔재미인데 어눌해서 그런지 더욱 재미있었다. 집으로 갈 거야? 알았어. 아무래도 동양권 외국어인데다가 한국어이다보니 위엄 넘치는 연기 때와는 다른 모습. 포스터의 카피와 다르게 키아누 리브스는 상대적으로 연기가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알 파치노에 비하면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는 좀 깬다. 남부 미국 플로리다 사투리를 구사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좋게 봐줘서 그렇고 국어책 읽기 그 자체. 맡은 배역에 충실하기 위해 영화 배경인 뉴욕에서 실제 변호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데도 이 꼴이니... 그냥 이 형은 끝장나려는 세계를 건져주는 무표정 구원자가 제일 잘 어울린다.

여주인공이자 키아누 리브스의 부인으로 나오는 샤를리즈 테론 역시 배역을 위해 뉴욕에서 3개월의 촬영 기간 동안 하루 한 시간씩 심리 치료사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노력 덕분인지 정신 분열증에 시달리는 환자 역할을 잘한 것 같다.


심슨에서 패러디된 장면. 영화 자체가 핀볼 기계로 패러디된 경우도 있다.


영화에서는 악마가 유혹하는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인지 정사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OCN과는 다르게 무삭제판에서는 헤어 누드까지 나오니 관람 시에는 주의 요망. 등장하는 젊은 여자 치고 가슴 안 보여주는 여자가 거의 없을 정도. 참고로 키아누 리브스 엉덩이도 나온다.


자살을 통해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주체성을 회복하는 장면은 조금 맥 빠지긴 했으나 두 배우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따지고 보면 《인셉션》에서도 현실로 돌아오는 열쇠 중 하나는 자살이었다. 거기서는 주체성에 관한 내용이 아니어서 그 의미는 조금 달랐지만. 마지막 불꽃 장면에서 알 파치노의 열연이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알 파치노가 영화를 종장까지 끌고 간 느낌을 받았다. 키아누 리브스가 나왔는지 기억도 안 날 지경.


Vanity is my favorite sin. 직역하면 '허영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죄지' 정도. 허영에 빠져 주변을 못 보고 달려가는 사람에 대한 경고문이다.


결과적으로, 배우만 보고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는데 의외로 마음에 든 영화다. 아주 좋은 영화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단순히 팬심으로만 볼 수 있는 그런 《긴급조치 19호》같은 영화는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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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_클로버
무색의 녹색 생각들이 맹렬하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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