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 《몰락》보다 이 영화의 장면을 이용한 패러디를 먼저 접했다. 그 중 유명한 것은 통큰치킨 패러디LG 트윈스 DTD 패러디(이건 11년도 기준).


패러디가 하도 많이 나와서 이제 이 장면만 보면 웃음부터 난다. 그러다 원본을 제대로 보고 싶었다.



그들은 이 운명을 그들 스스로 불러들였어.역시, 인류 최악의 사람답다.

영화는 히틀러의 최후까지 같이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실제로 히틀러는 인종청소와 같은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과는 반대로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을 죄다 기억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했다고 한다. 뭐 그것도 정치력의 하나겠지만... 그나마 PC방 전원 꺼진 것마냥 급변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등 히스테릭한 면모가 영화에 자주 등장해서 그런 차이에서 나오는 위화감이 극대화되어 보인다.


비영어권 영화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말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만큼, 소재도 그렇지만 영화 연출 자체도 훌륭하다. 영화의 주연 '브루노 간츠'는 파킨슨 병을 앓는 히틀러의 마지막을 연기했다. 맡은 배역 연기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그는 히틀러의 음성을 찾아서 듣고 파킨슨 병을 앓는 환자를 찾아가 연구했다고 한다. 완성도가 높은 부분은 연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상미가 괜찮은 부분이 있는데, 영화 초반 베를린의 정보를 연합국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모든 문서를 소각하는 장면이 있다. 이 때 베를린은 흰 종이에 휘날린다. 내가 보기에는 베를린의 최후를 암시하는 듯 하다. 또한 히틀러가 꿈꾸었던 도시 모형물을 직접 설명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카메라는 아치형 조형물을 프레임으로, 히틀러의 얼굴만 나오게 잡는다. 이는 자기만의 궁전에 갇힌 히틀러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서사적 흐름과 장면 전환이 결합되는 등, 가히 좋은 몽타주라 말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패색이 짙은 베를린에서 벌어지는 파티장에 떨어지는 포탄은 현실을 보여준다. 게다가 히틀러는 방에서 케이크를 먹는데 식수를 받으러 돌아다니는 시민들은 포탄에 맞고 사망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프랑스 대혁명 직전의 왕족과 시민들처럼 나치당과 시민들 간 간극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 같다. 후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독일군 장군들은 이미 졌다는 걸 알고 술이나 퍼 마시고 있는데 병졸들은 목숨을 다해 장군들을 지킨다.


거기다 패전 직전의 국가를 잘 묘사했다. 국가가 시민들을 징병하여 국민돌격대가 운용되기도 하고 자기 목숨 지키려고 도망가는 시민들을 즉결처분하는 군인들이 나오기도 한다. 충격적인 장면은 자살 장면이다. 이상하게도 장교들의 자살 장면은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극중에서 히틀러는 자살하지만 죽은 이후 그의 모습은 스크린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외 낮은 계급의 군인들이 자살하는 장면은 그대로 여과없이 계속 등장한다.


히틀러가 자기 입으로 "이 전쟁은 졌어"라고 말하는, 주로 패러디된 장면이 초반에 나와서 영화가 짧겠다고 생각했는데 상영시간은 2시간 30분이 넘어간다. 그렇지만 현대 최악이라고 표현되는 나치 무리가 서서히 '몰락'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금세 간다. 물론 나는 2차대전 영화라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뻬뻬샤를 든 소련군이 베를린에 당도했을 때 북받치는 기분이란...


WRITTEN BY
_클로버
무색의 녹색 생각들이 맹렬하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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