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몰락》을 보고 급히 생각이 났다. 히틀러 하면 찰리 채플린이지. 그래서 이번에는 《위대한 독재자》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게 아주 명장면이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독재자 힌켈(히틀러)와 닮은 이발사 슐츠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쌍십자당(나치당)에게 박해를 받다가 우연한 기회에 서로의 위치가 바뀌게 되어 이발사는 단상에 서게 되고, 나치즘 연설 대신 자유 투쟁에 대한 연설을 하게 된다.


초반에는 전쟁 신이 나오는데, 전쟁 중에 상대 국가과 같은 총을 쓰는 모습을 보고 고증은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근데 의외로 다른 곳이 치밀해서 당황했다. 영화가 상영된 연도는 2차대전 당시인 1940년이나, 제작은 그 전에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그 당시 미국은 2차 대전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데다가 별로 관심도 없었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는 유대인에 대한 박해, 강제수용소의 존재,  밀가루에 톱밥을 섞어 구운 빵, 독일의 독가스 개발 및 주목 등 이후 역사에 실재한 사건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는 영화 구성 도중 일어난 채플린의 참신한 창의력이었겠지만, 나는 보는 내내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거기다 히틀러 주변인도 묘사가 잘된 편이다. 실제 과체중이었던 공군 에이스 괴링은 뚱뚱하니까 희극에 적합한 인물이라서 넣었겠지만, 언론플레이의 악마 괴벨스가 나와서 감탄했다.


치밀한 소재 하니까 생각난다. 실제 히틀러는 예술품에 관심이 많았는데, 영화에서도 그러한 점을 반영한 듯 하다. 히틀러의 특성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신은 아니지만, 극 초반 연설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가는 신이 있다. 이때 밀로의 비너스상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나온다. 밀로는 비너스상이 발견된 밀로스 섬의 이름을 딴 거고 로댕은 조각가다. 밀로 자꾸 헷갈려. 근데 웃기게도 두 조각상 모두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다. 밀로의 비너스상은 양팔이 전부 없는데 팔 한 짝을 복원해서 기어코 나치 경례를 하게 만든 것. 생각하는 사람도 한 쪽 주먹은 턱 끝에 대고 있지만 다른 손은 경례를 하고 있다. 이거 보자마자 격뿜... 계속 돌려봤다.


소재말고도 희극적 요소는 충만하다. 채플린이 직접 넘어지고 맞고 때리거나 터키행진곡에 맞춰 움직이는 등 지금보면 가소로운 면도 있긴 하지만 모습만은 경쾌하다. 물론 특유의 블랙 유머도 덤으로 들어있다. 독일 돌격대가 유대인 지역인 게토를 순찰할 때 노래를 부르며 아무렇지도 않게 유대인 가게의 창문을 깨고, 나폴리니(무솔리니)와 힌켈이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자신이 앉은 의자의 높이를 계속 올리는 등 관객을 웃게 만들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을 지니도록 만든다. 그 중 압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독재자 힌켈이 풍선으로 만든 지구본을 가지고 노는 장면이 그것이다. 위의 포스터에서도 나오지만 이는 독재자의 세계 유린을 그대로 비유하므로써 시각적 재현을 충실히 해냈다.


실제 인물을 차용하다보니 연설이 많이 나오는데 영어도 아니고 이탈리아어도 아니고 독일어도 아닌 힌켈의 연설은 몇 군데 긴 부분이 있어 지루하다는 생각이 번뜩 들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연설 부분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아래는 이발사 슐츠가 독재자 힌켈 대신 올라간 단상에서 연설하는 신이다.



채플린은 이 신 하나를 위해 앞을 모두 희극으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사상의 직접 표출은 유치하게 보일 수 있다. 이 영화가 시종일관 진지한 영화였다면 저 대사를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두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코미디를 보여주다 갑자기 진지한 얘길 하니 집중할 수밖에는 없었다. 《은하영웅전설》의 주인공 양 웬리도 매사 진지한 인물이었다면 민주주의 발언의 색이 바랬을지도 모른다. 영화인지 실제 연설인지 알 수 없는 현장감을 보여주며 열변을 토한 채플린은 후에 매카시즘의 직격탄을 맞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는 게 함정


백린탄이 쏟아지는 계절이다. 맞는 아버지 밑에서 큰 자식이 커서도 자기 자식 때린다더니 이스라엘이 과거를 잊은 듯하다. 물론 채플린의 저 대사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노예가 되지 않도록 세상에 대해 더욱 궁금해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참고로, 콧수염 버프를 받긴 했지만 히틀러와 채플린이 정말 많이 닮았다. 자세히 보면 귀가 다르다.


히틀러도 이 영화를 봤다는데 채플린이 미국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 쌍십자 보면 자꾸 메탈슬러그 모덴군 생각난다(...)


WRITTEN BY
_클로버
무색의 녹색 생각들이 맹렬하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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