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상수동이나 연남동으로 이사가서 매일 홍대를 걸어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매뉴얼만 숙지하시면 됩니다.

일단 홍대 전문가가 되려면 좋아해야 하는 카페가 몇 군데 있습니다.



카페를 이야기할 때 커피프린스나 코코브루니, 헬로키티카페를 꼽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곳들을 꼽는 것은 다른 홍대 전문가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습니다.

제일 좋은 매뉴얼은 카페 더 블루스 정도 입니다.

카페 더 블루스가 어디 있는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홍대앞 관련 책 한 권 안 읽어도 됩니다.

그저 다른 많은 카페들에게 프로밧으로 로스팅한 커피를 공급한다는 사실 정도만 기억하면 됩니다.


카페 전문가들까지 버로우 시키고 싶다면 혼잣말하듯이 커피랩을 꺼내면서

그 주인의 원래 소속인 교대역 예술의 전당을 살짝 언급해주시면 됩니다.

홍대는 곰다방 망한 다음에 갈만한 곳이 별로 없지만

예술의 전당이 좀 나은 것 같다고 하면 중간은 합니다.

나는 전시회 보러가는 것도 좋지만 커피 마시러 간다고 하면

당신은 이미 예술의 경지를 뛰어넘은 커피 애호가가 됩니다.


상대방이 TV에서 나오는 곳을 보고 싶다고 할 때

상수동 쪽 앤트러사이트를 데려가면 그는 당신 발에 입맞춤을 할지도 모릅니다.



과자나 빵, 디저트 가게를 이야기할 때 주의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마카롱에서는 홍대 정문 근처 마카롱보다는 슈아브를,

케이크 가게 중에서 빌리 엔젤보다는 스놉을,

디저트 가게 중에서는 몹시보다는 르뿌띠푸를 선호한다고 해야 합니다.

이도저도 다 싫으면 퍼블리크 정도 추천해 드립니다.


홍대 주변 도넛 가게에서는 던킨 도너츠를 까고 미스터 도넛을 추앙하십시오.

수요일에 던킨이 세일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곁들여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크리스피 크림을 몰아내고 유니클로 따위가 들어왔을 때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이미 전문가!


사람들 사이에서 빵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리치몬드가 홍대에서 물러난 것이 아쉽다면서

그냥 어쩔 수 없이 폴앤폴리나를 간다고 하면 당신의 품격은 한층 높아집니다.

아침마다 김진환 제과점 식빵 사러가는 것이 귀찮다고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면 더욱 좋습니다.

그리고 피오니를 말할 때 '딸기 제철이 아니면 별로지만

느끼함을 많이 잡아줘서 그럭저럭 먹을만 하지...' 정도의 멘트만 날리세요.

쿄 베이커리나 베이커리 봉교와 비교하여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르신들께 선물할 것을 고르는 친구들에게는

절대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추천하면 안 됩니다.

홍대 쉐즈롤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클럽 이야기할 때, 절대 힙합 클럽의 힙자도 꺼내시면 안 됩니다.


NB나 M2를 입에 담기 시작하면 이미 홍대 전문가 행세는 물건너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코쿤을 이야기했다면 힙합 클럽 전문가들에게도

혀 차는 소리를 22.2 울트라 서라운드 채널로 들을 수 있습니다.

클럽은 무조건 라이브 클럽입니다. 이 때도 상상마당이나 스팟을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빵이나 드럭 정도 가능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라이브 클럽에 가는 게 무슨 재미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한국 인디 문화의 미래 유망주를 발굴하는 맛이 있지'라는 멘트만 날리세요.

사람들이 의심한다면 가끔 노래방 가서

검색하기도 어려운 인디 음악 1절만 부르고 끊어주면 뻑 갑니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스컹크헬이 공간감은 별로였지만

하드코어록의 열정만은 홍대 전역을 울렸지"라고 하시면

홍대 인디씬 초창기 멤버라고 추앙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인디씬에 관심이 쏟아져서 바다비 네버다이와 같은 공연이

필요 없어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면서 눈시울을 붉힌다면

걷고싶은거리는 물론 홍대 놀이터 버스킹하는 사람들까지

당신에게 연이어 오체투지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음식점 중에서는... 하카다분코나 곱창고는 절대 안 됩니다.

차라리 나고미라멘이나 교수곱창 정도가 괜찮겠네요.

사람들이 안 찾아서 가게가 합쳐졌는지, 생생정보통에

정통 메뉴가 아닌 다른 메뉴로 올라왔던 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일본 라멘 대회에서 3관왕을 하고,

월 매출 2억이라는 얘기를 슬쩍 웃으면서 흘려주면 됩니다.


카레는 아비꼬가 아니라 당연히 웃사브, 라고 하시면

인도로 봉사활동을 갔다온 스펙 쩌는 사람 행세를 할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칵테일바는 더 간단합니다. 그냥 댓글마다

"홍대 예술가들의 살롱 'BAR다'니뮤ㅠㅠㅠ" 하시면 끝납니다.

입을 털 때는 맛보다 스토리텔링이 더 중요합니다.



홍대 돌아다닌 기억 중에 어떤 일이 가장 좋았냐는 질문에,

버스커버스커나 십센치의 버스킹,

우연히 갔던 날이 클럽데이라서 전화번호를

애들에게 퍼 주었던 일이라고 얘기하시면 안 됩니다.

"홍대가 가장 좋은 건 편의점 술안주를 가지고

친구들과 노상을 까도 즐겁기 때문"이라고 시크하게 말해 주세요.



대충 이 정도입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자 꼬시고 싶어서 홍대에 취미를 갖게 되었다고 절대 고백하지 마십시오.

캐무시 당합니다.




원본


당연히 위의 이야기는 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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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_클로버
무색의 녹색 생각들이 맹렬하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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