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소설가; 김영하

강연에 참석한 일은 꽤 지난 일인데 게을러서 포스팅을 하지 못하다가 시험기간이 되어 글을 올린다.


강연회는 도서관에서 주최했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아주머니 분들이 상당히 많이 오셨다. 그래서 김영하 작가는 어머님들이 공감할 농담을 자주 던져 좌중을 여러 번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근데 나도 웃긴 걸 보니 내 개그코드는 아파트 반상회나 녹색 어머니회에 적합한 것 같다.


강연에서 기억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설에는 뚜렷한 주제나 메시지가 없어요."


"세계 각국 유력 언론이 꼽은 소설 1위는 안나 카레니나예요. (중략) 이걸 제가 스포를 하게 될 거 같은데 읽으신 분들은 상관 없겠지만 안 읽으신 분들은... 어차피 지금까지 안 읽었으면 앞으로도 읽을 일이 없을 거예요"


"좋은 소설은 줄거리를 알아도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메시지를 이끌어내면 안나 카레니나는... 바람 피우면 죽는다? 가 되겠네요."


"글쎄요, 소설은 도덕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닙니다."


"자꾸 얘기하는 것 같지만... 소설을 읽고 주제를 말하라고 하기는 너무 어려워요. 그러니까 애한테 책을 읽게 한 다음에 뭘 알았냐고 밥상에서 다그치지 마세요."


"현대 소설은, 본받을 만한 인물도 없고 아름다운 얘기도 없는 부도덕한 인물의 이상한 세계예요."


"밀란 쿤데라가 그랬죠.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정지된 세계다."


"독자들도 역시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최대한 주인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안나 카레니나가 무슨 짓을 해도 오히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응원하죠."


"소설은 잘 안되고, 추락하는 것들... 그리고 죽음이나 실패에 대해서 많이 다뤄요."


"소설에서는 우리 대신 불안함을 느끼고, 우리 대신 비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인물들이 나와요. 이 인물들은 우리 대신 그런 일을 해주는 인물들이죠. 그런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는 안도하게 됩니다. '아. 욕망에 가득찬 나 역시도 괴물이 아니구나.'"


"그렇죠. 소설을 읽으면, 비도덕적 상황에 맞닥뜨려도 인물의 내면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니까요."


"저는 실패전문가입니다. 남들에게 밝은 미래를 예견해줄 수는 없지만 실패할 거라고 분명히 말해줄 수는 있어요. 왜냐하면 인간은 만족하지 못 하거든요. 결국 실패를 경험해요. 운이 좋게 모든 갈림길에서 올바른 결정만 내린다고 해도 인간은 죽음을 피하지는 못해요. 그럼 결국 실패하죠."


"텔레비전 세계는 재미있고 즐겁기만 해요. 그러나 현실은 아니예요."


"그러나 실패도 존엄합니다."


"작가라면 어휘수집가가 되어야 해요. 미용실에서 머리 자를 때 두르는 흰 천을 뭐라고 하시는지 아세요? 저는 물어봤어요. 컷복이라고 하더라구요. 외래어와 우리말의 결합이죠. (중략) 미국 서부영화에서 중요 인물들이 술집에 들어올 때 손이나 발로 힘차게 박차며 들어오는, 팔랑거리는 문 있잖아요. 서부영화에 꼭 나오는, 앞뒤로 흔들리는 나무 문이요. 언제 목수일 하시는 분께 물어봤더니, '아 그거! 나비문!' 정말 듣고 보니 나비문인 것 같아요."


"소설은 낯선 세계에서 일어나는 친숙한 일이에요."


"소설에 심리묘사가 없으면 재미가 없죠."



주옥같은 말이 참 많았는데 망할 기억력 때문에 많이 날아갔다. 사인 받으려고 책도 많이 들고 갔는데 김영하 작가는 바로 부산에 가야한다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좋지만 소설을 읽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귀이다. 욕망이 있다고 괴물은 아니라니, 이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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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_클로버
무색의 녹색 생각들이 맹렬하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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