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대오거리역 일 번과 이 번 출구 통로에는 손바닥 만한 의자가 다닥다닥 걸려있다. 쉬다 가시라고 혹은 누군가 여기 있었다고. 어느 쪽이든 앉을 곳은 너무 좁다. 제목도 없는 이 작품을 오 년도 넘게 봤으면 질릴 때도 됐는데 이상하게 그 부근에 가면 발걸음이 느려진다.

하는 것도 없는데 쉴 틈이 적다. 식이조절 중이라 식사 시간도 사용할 수 있게 됐는데 이상하다. 사실 쉴 틈이 적은 것이 아니라 예약된 일정에 대한 걱정 없이 쉬는 시간이 적은 거겠지. 사 학년 이 학기에도 조별 과제는 나를 관통하고 천 이백 쪽이 넘는 책들은 발뒤꿈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졸업하려면 논문도 써야 하는데. 그러게.


동기한테 게임 리뷰를 부탁받았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못 쓰고 있다. 아니, 그 전에 봤던 영화나 책도 리뷰를 해야 하는데 전혀 손을 못 대고 있다. 아니, 그 전에 추천받은 영화나 게임 등 컨텐츠들을 전혀 즐기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 전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아니, 그 전에.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이제 철이 조금 지난 유행어다. 나에게도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있던 때가 있었다. 대학 합격이 발표난 재수생 시절이었다. 나는 합격 전화를 받기 직전까지 삼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수능이 끝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을 때였다. 그때 신발이 좀 작아서 뒤꿈치가 잘 들어가지 않았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때는 이제 영원한 안식을 맞을 때나 적절한 말일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일 년에 단 며칠만이라면 인생에 큰 해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아껴 써야지.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때가 아니라면 별 수 없이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요새 듣는 곡은 스크릴렉스. 잠깐, 아티스트를 추천하려고 이 글을 쓴 건 아니었는데. 역시 맥락이 통일되지 않는 글쓰기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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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_클로버
무색의 녹색 생각들이 맹렬하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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