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포영화를 잘 못 본다. 무섭잖아. 놀이기구는 정말 잘 타는데 공포영화는 무섭다. 흑흑.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이닝》을 보게 된 것은 주변에서 계속 추천하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감독이 스탠릭 큐브릭이기 때문. 스탠리 큐브릭은 찍고 싶은 대로 찍어도 돈이 벌리니 정말 행복했을 것 같다.


※ 이후 나오는 내용은 영화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주의.


영화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땐 주인공이 짐 캐리인줄 알았는데 잭 니콜슨이었다. 안면인식장애가 있나 보다. 잭 니콜슨은 볼 때마다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밖에 생각이 안 난다. 광기 어린 표정 연기는 정말 매번 멈춰보게 만들 정도. 분장이 없어도 미치광이 연기하는 것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버킷리스트》에서는 그러지 않았잖아요 아저씨!


참고로 제목인 샤이닝의 뜻은 초반부에 나오는데, 입을 열지 않고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등의 초능력이다.


이명처럼 들리는 하이톤의 노이즈가 영화 중간중간마다 들어가는데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잘 삽입했다. 어 이거 설마 영화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가? 노이즈 외에도 대니가 세 발 자전거를 타는 씬에서 카펫과 바닥 위를 지나가면서 내는 소음의 차이가 불안감을 고조하는데 한 몫을 했다. 아이가 자전거를 타는데 조마조마하게 보게 만든 영화는 이게 처음이다.

로비였나 큰 홀에 잭이 혼자 앉아 타이핑을 치는데 부인이 들어오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부인은 남편이 걱정되어 그에게 눈이 많이 온다는 소식을 전해주지만 잭은 집중력을 방해한 것에 화가 나서 쓰던 부분을 찢어 버리는데, 이 장면에서 소리와 영상이 아주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롱테이크로 부인이 걸어오는 장면을 공허할 정도로 크게 잡는 구도가 마음에 들어서 더욱 기억에 남은 모양이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잭은 바보가 된다" 'Jack'은 '철수'처럼 불특정다수를 의미하므로 본디 속담과 같은 문장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이름과 같아서 의미심장한 뜻을 내포한다. 근데 이건 미쳤다기 보다는 창작의 고통이 심해서 반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쓴 거 같기도 하고...


구도 하니까 생각나는 장면이 더 있다. 후반부에서도 활약을 하는 4미터 벽의 미로를 초반부에 부감(Birds eye view)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주인공 잭의 가족이 호텔에 갇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훌륭한 장면이다. 처음에 보자마자 아 이건 정말 말도 안돼, 하고 소리쳤다... 분명 컴퓨터 그래픽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렇게 깔끔하게 위에서 찍을 수가 없어...

부인이 거의 미친 것이나 다름없는 잭을 냉동창고에 가두는 장면도 볼만 하다. 호텔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고 외치는 잭의 모습을, 카메라는 로우앵글에서 잡아내는데 냉동창고 문과 잭을 동시에 어떻게 그렇게 잡았는지 궁금할 정도다.


따로 이렇게 분석할 것도 없이 영상미는 정말 훌륭하다. 그런데 서사적 전개는 뭔가 하나씩 빠진 느낌이 든다.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안 읽어서 모르겠지만 스티븐 킹이 영화를 보고 실망했다고 하니 스탠리 큐브릭이 잘못했겠지... 일단 내가 실망한 점은 잭이 광기에 빠지는 모습이 3류소설처럼 진행되는 것과, 흑인 아저씨가 너무 허무하게 죽는 것 그리고 아이의 '샤이닝' 능력이 도대체 언제 쓰이는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잭이 미쳐버린 이유가 창작의 고통 + 알콜 + 망령의 속삭임 정도로 보이는데 뭔가 너무 설명 없이 지나가서... 흑인 아저씨는 뭔가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나오는데 너무 어이없이 죽었다. 희망이 순간에 꺾여버린 모습을 표현하기는 좋았지만 뭔가 아쉽다. 그외에, 아들 대니는 흑인 아저씨를 부를 때 샤이닝 능력을 쓴 거 같기는 한데 내가 보기에는 샤이닝이 그냥 호텔에 깃든 망령들을 보는 능력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뭐 이런 건 자잘한 개인적 취향이고... 결국 이번에도 스탠릭 큐브릭 작품에 매료되고 말았다. 저렇게 좋은 호텔에 혼자 돈 받으면서 5개월 동안 있을 수 있다면 내가 당장 갈텐데.


WRITTEN BY
_클로버
무색의 녹색 생각들이 맹렬하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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