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들은 냉정하다. 인디 게임이라고 해서 봐주는 일이 전혀 없다. 그들은 입맛에 맞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시작이 어떠하건 간에 결과물이 좋아야한다. 그래서 인디 게임은 잘 되기가 어렵다. 수십억 원을 가지고 수백 명이 달라붙어 게임을 만드는 회사와, 기금을 모집해야만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소규모 개발사는 애초에 '게임'이 될 수가 없다. 인디 게임은 모든 조건이 열등하다. 최신 그래픽, 명곡으로 가득찬 OST 앨범, 방대한 즐길 거리(컨텐츠) 등의 완벽한 게임은 자판기에서 나온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즉, 돈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아이디어다. 아이디어는 스토리나 게임성, 조작 요소 등을 모두 결정한다. 사람들이 스팀을 뒤져가며 인디 게임을 찾아다니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신선한 아이디어를 보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저렴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큰 이유일 듯 맥픽셀이나 FTL, 페이퍼 플리즈,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게임들은 그래픽이 아타리 20년은 후퇴한 수준이라며 리뷰하는 사람들마다 까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게임 평점을 확 깎아먹지는 않는다. 사실 게임을 끝내고 보면 재미있는 순간만 의식될 뿐 그래픽 수준에 대해서는 의식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트랜지스터》Transistor는 게임성 뿐만 아니라 그래픽, 음악까지 수준급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더욱 잘 살려낸 것이다.


나는 일러스트가 좋다고 게임을 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렇지만 컷신이 좋아서 나쁠 것은 없지.


트랜지스터는 액션RPG에 가깝다. 그러니까 맵을 돌아다니다가 적을 만날 경우 그 지형 그대로 적을 상대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특징적인 것은 전투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으로, 스페이스 바를 눌러 이동 경로와 스킬 사용 등을 조합하여 공격을 설계(계획)할 수 있다. 설계 한 번을 한 턴으로 치고 한 턴이 끝날 경우 일부 스킬을 제외하고는 사용이 불가능해진다. 죽기 싫으면 턴 게이지가 차오를 때까지 도망쳐야지 뭐. 멈춘 상태에서 공격을 계획할 수 있으니 FTL의 공격 시스템과 유사한 면이 있다.


위와 같이 미리 설계를 해 놓고 턴을 실행하면 계획대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공격을 한다. (이미지는 구글에서 긁었다)


어떻게 보면 파이널판타지의 전투(ATBS; Active Time Battle System)와 흡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턴이 끝났다고 해서 잠자고 뺨을 대고 있지는 않으므로 완전하게 그것으로 치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정한 시간 내에 화력을 퍼 붓는 점은 불릿타임 같기도 하다. 불릿타임 게이지 찰 때까지 도망다니는 것도 비슷 실시간으로 계속 스킬을 활용하며 적을 상대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지만 화력용 공격 스킬은 대부분 시전 시간과 시전 이후 딜레이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턴을 소모하지 않고 싸우는 건 사람 할짓이 못 된다. 이렇게 되니 전투는 화력 퍼 붓는 턴 시간, 도망다니는 턴 회복 시간으로 나뉜다. 전투 중에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은 멀티플레이 시스템은 거의 포기해야 하기에 약점이 되겠지만 싱글플레이에서는 귀중한 시스템이다. 조작이 더디거나 생각을 오래해도 패널티가 없기 때문에 유저 진입장벽마저 낮추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 FM이나 문명, HOMM, 심즈, 롤러코스터 타이쿤 등 악마의 게임 대부분은 일시정지 플레이가 가능하거나 턴 방식 게임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전투 시스템에도 감명 받았지만 게임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 것은 스킬 조합 시스템. 레벨이 오를 때마다 스킬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전투 스타일이 완전 바뀐다. 동일한 스킬이라도 액티브 메인 스킬이냐, 다른 액티브 스킬을 보조하는 애드온 스킬이냐, 패시브 스킬이냐에 따라, 그러니까 어느 종류 슬롯에 스킬을 넣냐에 따라 기능이 분화된다. 스킬끼리 조합하면 결과값이 다르게 나오는 것도 포인트. 그렇지만 일부 효율 좋은 조합법이 있기 때문에 게임 후반부에 간다면 아마 다들 스킬 조합이 비슷해질 것 같다.


이미 재미가 보장된 게임의 평점을 더욱 올려주는 것은 바로 사운드와 그래픽. 남자가 들어도 반할만큼 멋들어진 남자 나레이션과 몽환적인 음악, 게다가 3D로 의심될 만큼 자연스러운 2D 캐릭터 스프라이트까지... 맵이나 스킬, 플레이어블 캐릭터 등 컨텐츠만 더 많았더라도 절대 인디게임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토리는 몽환적인 측면을 강조하느라 조금 불친절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납득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굳이 사족을 달자면 스토리가 게임을 하게 만드는 동기부여에 약한 측면이 있다. 전투와 이벤트 진행 간 괴리감이 좀 큰 느낌... 그래픽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래



비공식 한국어화(한글화)는 팀 왈도에서 맡았다. 전에는 게임마다 '우리는 한다 번역을'이라는 같은 슬로건을 내걸더니 이번에는 좀 더 왈도체에 가까워졌다(...) '터프하다고 했잖아.'[각주:1]처럼 번역하기 애매한 부분, 그 외 의미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지만 아마추어 팀이 한 것 치고는 완성도는 높다. 일단 서울남산체 폰트부터 아주 깔끔해서 좋다. 그렇지만 공식 패치가 아니라서 그런지 순수하게 한글패치 원인으로 튕기는 현상이 발생한다. 얘기를 들어보면 스팀 유저나 복돌 유저나 비슷한 현상이 나오는 듯. 나도 초반에 좀 튕겼으나 나중에는 스트레스 없이 즐겼다.


그래픽 같은 게임성 외의 부분을 게임성 하나가 쌈싸먹을 수 있는 게임들은 거의 전부 인디게임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인디 게임을 즐긴다. 그렇지만 게임성 외의 다른 부분도 높다면 금상첨화. 좋은 컨텐츠를 즐겼다.

  1. 전투 전에는 적이 터프하다는 의미였으나 전투에서 승리하자 주어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주인공이 역시 강할 줄 알았다는 말장난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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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_클로버
무색의 녹색 생각들이 맹렬하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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