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은 죽었는데 혼이 떠다닌다. 이미지는 구글링해서 찾았다.



《머더드 : 소울 서스펙트》(이하 머더드)는 유령을 조작하여 세일럼 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게임이다. 게임 타이틀 사진은 아주 멋졌다. 중절모를 쓰고 펑크 스타일의 형사복장을 한 채로 불이 꺼지지 않는 담배를 물고 권총까지 차고 다니는 미중년이 주인공이었는데, 느와르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정말 완벽한 컨셉이었다. 물론 귀신이나 악마 같은 초자연현상, 오컬트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그런데 담뱃불을 비벼 끄는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불만 번쩍이고 타들어가지도 않는 걸 보니 담배도 주인따라 유령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스퀘어 에닉스가 로고에 박혀있길래 일단 믿고 시작했는데 그나마도 별로 없는 내 인내심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달치 인내심을 전부 사용한 느낌이었다. 추리 어드벤처의 새로운 브랜드라고 믿었는데 《머더드》가 독자적으로 내세울 만한 장점은 거의 없었다. 육신이 아니라 혼이기 때문에 현실의 사물에 제한을 받지 않고 움직인다고 했는데, 통과할 수 있는 사물은 상당히 제한적이었고 남이 열어주지 않으면 집에 들어갈 수도 없는 무능력한 모습마저 보여주었다. 심지어 높은 곳에 가기 위해 고양이의 몸을 빌리는 방법을 사용하기까지 한다. 고양이 울음도 낼 수 있고 고양이로 움직이는게 사실 재미있기는 했지만 정작 유령 자체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은 사람보다도 더 제한적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으면 안 됩니다.


움직이는 것 말고, 유령이 누릴 수 있는 특권들도 따지고 보면 조금 빈약하다. 주인공인 로난은 죽은 다음에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가는, 빙의라는 행위를 할 수 있다.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지만 게임에서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다. 마음을 읽는 거나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어떤 사건에 대해 떠올리게 하거나 그가 보고 있는 사건 단서들을 엿보는 일 정도. 가끔 함정을 피하기 위해 사람 몸에 들어가 있기도 한다. 다른 귀신들은 빙의해서 사람 조종도 하고 재미있는 거 많이 하는데 정작 나는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니 답답함이 솟구친다. 마음을 읽는다는 일은 일면 신나보이지만 정작 해보면 재미가 없다. 차라리 스퀘어가 예전에 내 놓은 《라이브 어 라이브》 근미래편 주인공 아키라가 초능력으로 마음을 읽는 것이 더 재밌다. 게다가 캡콤은 폴터가이스트 능력 하나로 《고스트 트릭》이라는 재미있는 게임 하나를 만들었는데 《머더드》에서는 그 능력이 정말 천대받는 느낌이다. 움직이게 할 만한 사물도 적고 사용하는 것도 동료를 도망치게 하는 것에나 쓰인다. 그것도 도망치는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리 TV를 껐다 키고 자판기에서 캔 음료수를 마구 뽑아내도 그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공짜 콜라에도 꿈쩍하지 않는 걸 보니 이 마을은 부촌임에 틀림 없다. 액션에 반응한다고 해도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저게 왜 저러지, 하는 정도로 끝나니 허탈하다.


추리 자체도 새로울 것이 없다. 사건 현장들을 이 잡듯이 뒤져 나온 단서들의 일부는 함정 단서들이라서 게임 진행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렇지만 화면 하단부에 있는 증거 수를 가득 채우지 않으면 신경이 쓰여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럴 거면 《L.A. 느와르》처럼 가까이 가면 소리라도 나게 하거나 《셜록 홈즈의 유산》처럼 근처에 증거가 있다는 능력이라도 쓰게 해 주지. 게임 그래픽은 21세기인데 게임 방식은 20세기를 그대로 가져왔으니 당연히 지루하지 않을 리가. 귀신 형사라는 좋은 컨셉을 못 살린 것 같아서 너무 아쉽다. 게임 막간 마다 주인공을 지옥으로 데려가려는 악마와 숨바꼭질을 하는 미니게임이 있다. 실제 방식은 숨어 있다가 악마 뒤를 잡아 퇴치하는 잠입 액션 형태이라 내 취향은 아니다. 난 영화 《콘스탄틴》 같은 액션이 좋단 말이다.  천만다행하게도 미니게임 시작 전에 자동 저장이 되므로 설사 걸려서 도망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금세 시작하면 된다. 인내심 없는 내가 해도 금방 악마들을 소탕할 수 있으니 난도는 낮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잘생긴 주인공 외에 마녀 사냥이라는 컨셉, 음산한 마을 분위기 등이 그나마 칭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스퀘어 에닉스 아니랄까봐 컷인 영상도 기막히게 잘 만들기는 했는데, 나는 영화를 보는 중이 아니었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마지막 최후의 결전 때도 맥이 빠지기는 했는데 추리 게임이니까 액션을 최대한 절제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아니 그럴 거면 첫 부분에서 총에 맞지 말던가 왜 사람을 기대하게 만들어


아무튼 만족스럽지는 않은 게임이었다. 컨셉은 좋았는데 좋은 컨셉에서 다 뽑아내지 못하고 그냥 내놓은 느낌이 든다. 충분히 재밌게 만들 구석이 있었는데 말이지. 너무 심각하게 만드려고 해서 그런가. 《L.A. 느와르》는 스토리도 좋았지만 대사할 때 캐릭터 표정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불쾌한 골짜기 현상까지 일으켰는데... 《머더드》에서 주목할 만한 건 거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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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_클로버
무색의 녹색 생각들이 맹렬하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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