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영화 《달 세계 여행》부터 1968년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까지 인류는 달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난 우주에 대한 막연한 경외심이 있다. 우주를 묘사하는 것만 봐도 멋지다. 하얗고 검고, 조용하고, 현대적이고, 둥둥 떠다니니까. TV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이나 슈퍼패미컴판 비디오 게임 《제4차 슈퍼로봇대전》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우주에 덤비는 사람들이 항상 최신 기술로 무장해서 그럴 지도 모른다.


게임 FTL도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FTL은 플레이어는 우주연합군의 마지막 희망이 되어 반란군 추격대를 뿌리치고 반란군의 약점을 적은 기밀 문서를 가져다주(는 건 안 나오고 결국 보스 함선을 무찌르)는 이야기다. 게임이 배틀스타 갤럭티카나 스타트렉 등 우주를 세계관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차서,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게임도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 먼지에 내 함선을 보태다보면 자연스레 게임이 익숙해진다.


인디게임답게 게임 그래픽은 완벽한 2D다. 도트가 눈에 보이는 복고풍의 그래픽이지만 게임성은 훌륭하다. 오히려 3D였으면 게임 시스템을 망쳤을 듯.

게임 방식은 로그라이크. 그야말로 한 번 죽으면 끝. 저장 기능이 있긴 한데 그건 저장 슬롯을 여러 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할 수 있는 정도의 기능. 끄고 잤다가 다음날 다시 재개하라는 배려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게임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저녁》에는 그런 저장 기능도 없었다.


플레이어는 우주를 여행하며 스크랩(게임 내 화폐)을 모아 함선을 업그레이드하고 승무원을 모으며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면 된다. 광속 워프를 이용하여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이벤트가 일어나는데 특별한 컷신 같은 것은 없고 글로만 장황하게 설명된다. 90년대 이전 텍스트형 머드 게임을 하는 느낌이지만 선택지에 따라 스크랩을 얻거나 승무원을 잃는 등 결과가 달라지므로 꽤나 긴장된다.


게임의 묘미는 역시 전투. 승무원을 각 방에 배치하여 효율을 끌어올리고 무기를 사용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함선에 구멍이 생기면 때우고, 불이 나면 끄고, 적이 침투하면 백병전으로 물리쳐야 한다. 중반쯤 되면 정신이 없어지지만 스페이스 키를 눌러 언제나 정지할 수 있으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익숙해지면 텔레포트로 우리 선원을 적 함선에 보내 적 선원을 다 죽이고 배를 나포할 수도 있다. 나포한 함선은 사용할 수 없지만 전리품이 늘어난다. 괜히 부서지는 적 함선에 우리 선원을 텔레포트 시켰다가 적 함선이 우리측 미사일 포격으로 부서지면 우리 선원도 함께 우주 먼지가 되니 주의.


전력을 알맞게 분배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인데, 함선을 업그레이드 하다보면 전력에 투자할 자원이 없어서 초반에는 의료실 전력을 빼서 화기 관제소에 집어 넣는다. 이온 폭풍이 몰아치는 곳이라면 심지어 산소실의 전력까지 빼서 쓰게 되므로 빨리 전투를 끝내지 않으면 너와 내가 사이좋게 질식사 확정.

과학 고증이 잘 되어 있는 한 가지는, 불이 나면 에어록을 개방해서 산소를 없애는 방법으로 불을 끌 수 있다는 것. 승무원을 불난 곳에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많아 은근 자주 쓰게 된다. 튜토리얼에서 간단하게 배울 수 있다.



어째 한국어 번역 퀄리티보다 프로젝트 타이틀 퀄리티가 좋아지는 팀 왈도.


한글화는 고전게임 갤러리 [팀 왈도]에서 해주었는데, 확장팩의 한글은 아직 나오지 않은 듯하다. 영어라도 게임을 그럭저럭 할 수 있지만, 선택지 이벤트는 공략을 한 번씩 읽어보는 것을 추천.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도전하는 것도 좋지만 선택 한 번 잘못 했다가 함선이 갈리거나 승무원이 작별 인사를 고하는 이벤트가 뜨면 멘붕...(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꽤 오래 전에 하다가 지금에서야 리뷰를 올리게 되지만, 지금 다시 해도 재미있다. 간만에 게임성으로 승부하는 좋은 게임을 얻었다.



보스 함선과 즐기는 최후의 결전. 여기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인정.

왼쪽에 보이는 엔지 함선으로 보스를 물리치면 강한 함선 중 하나인 오스프리를 얻을 수 있다.

오리지널판에서는 아무 함선으로나 보스만 잡아도 줬는데...



WRITTEN BY
_클로버
무색의 녹색 생각들이 맹렬하게 잠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