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시간을 내서라도 하던 것이었는데 요새는 바쁘다보니 지쳐서 게임할 시간이 없었어.


아 게임하는데 인생이 방해된다ㅡㅡ


다행히 5월의 시작과 동시에 황금연휴가 있어서 전시회도 가고 책도 보고 게임도 할 수 있었다. 모바일 게임만 하다가 간만에 PC게임을 하니 체기가 쑥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주말동안 플레이한 게임은 Chroma Squad. 직역하면 '채도 전대' 정도. 위의 홍보 사진에서 유추해 보건대, 크로마라는 말은 TV에서 화면조정을 위해 사용하는 조정판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내포적 의미까지 고려하면 '크로마 전대'가 적절한 해석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색채 전대'나 '다색 전대'도 괜찮다고 본다. '다채 전대'나 '다채 레인저'도 적절한데. 중국에서는 오성전대五星戰隊로 부르는 모양이다.


이 게임은 나이트 오브 펜 앤 페이퍼Knights of Pen and Paper로 명성을 얻은, 브라질의 인디 게임 제작사인 비홀드 스튜디오BEHOLD STUDIO에서 만들었다. 일본 전대물(특촬물;특수촬영물)의 모티브를 가져와 만든 게임인데 어처구니없게도 정말 파워레인저 제작사인 사반 엔터테인먼트에서 소송을 걸었다. 사반에서는 법정 싸움으로 가든지 로열티를 지불하든지 그야말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는데 소규모 게임 제작사에서 장기간 법정 싸움을 버티기는 매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로열티를 주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타이틀 화면에 사반 엔터테인먼트 관련한 문구가 추가된 것. 오마주나 패러디로밖에 안 보이는데 소송까지 갈 줄이야. 인디 게임 만들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SRPG라서 전투는 턴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반적인 전투 시 조종 가능한 캐릭터(PC)는 5명이고 정찰병, 리더 등 각각 맡는 역할이 있다. 역할에 따라 특성이나 스킬도 다르기 때문에 전술의 가짓수가 늘어난다. 전투 시에는 전대물답게 협공Team Attack, 그러니까 여러 명이서 함께 공격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5명이 모두 공격에 가세하면 특별한 연출과 함께 어마어마한 데미지가 나온다. 무기로 공격할 때와 일반 공격 두 가지밖에 연출이 없어서 나중에 가면 연출 시간이 짧은 것에 감사하게 된다. 2명이나 3명, 4명의 경우에는 그냥 연출 없이 말 한마디 외치고 동시에 때리는 것으로 끝난다. 변신 전에도 협공을 할 수 있지만 특별한 연출은 없다. 연출 시간이 없어서 기다리지 않아 편하기도 하다.





전대물에 대원들 전투만 있다면 재미 없겠지. 물론 거대로봇(메카Mecha) 전투도 있다. 게임 내에서는 괴수 전투라는 명칭으로 나온다. 사실 괴수 전투는 미니게임 스케일에 불과하다. 로봇 합체 연출은 퀄리티도 낮고 극초반에 딱 한 번만 나오니 뭐. 그렇지만 전투 자체는 꽤나 재미지다. 간단히 설명하면 괴수 전투는 강화 + 리듬게임에 가깝다. 공격 콤보가 쌓일 때마다 공격 성공률이 낮아지는 대신 공격력 배율이 높아진다. 체감상 70%에만 근접해도 잘 빗나가는 거 같다. 방어할 때는 타이밍에 맞춰 클릭해줘야 하는데 퍼펙트 타이밍일 경우 데미지가 거의 안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꽤나 아프다.


그렇지만 매력적인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캐치프레이즈를 직접 정할 수 있다는 것. 감독이 마음에 안 들어서 자기들이 직접 인디 전대 회사를 차렸다는 스토리에 걸맞게 대원 이름, 전대 이름은 물론 변신 시 외치는 말이나 로봇 소환 이름까지 마음대로 지을 수 있다. 아 참, 한국어 발매가 안 되어서 영어만 가능하다. 참고로 나 같은 경우에는 세계 비폭력을 위해 주류 전대가 출동하는 것으로 컨셉을 잡았다.


내 플레이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대원 이름은 위스키, 보드카, 럼, 데킬라, 브랜디고 전대 이름은 A-Holic(Alcoholic). 변신 명칭은 Cocktail이고 변신 캐치프레이즈는 "High포션이 왔다!"이다. 하이포션 영어 명칭이 Hi-potion임을 감안하면 다분히 의도적이다(...) 로봇 이름은 Blackout(과음으로 인한 기억상실)이고 로봇 호출 캐치프레이즈는 "Booeora! Masyeora!"(부어라! 마셔라!)다. 정리해 놓고 보니 시청자에게 고소당해도 할 말이 없었네.


나처럼 대놓고 유해 방송을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스튜디오 컨셉을 플레이어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아, 대원 이름은 바꿀 수 없다. 그건 좀 아쉽군. 시작할 때 역할에 맞는 캐릭터와 이름을 정하면 게임이 끝날 때까지 바꿀 수 없다. 킥스타터 게임답게 후원한 사람에 한해 추가 캐릭터가 있다. 후원자용 캐릭터라고 해서 대단한 능력치가 있는 것은 아니고 좀 재미있는 능력치가 부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일반 캐릭터가 공격력이나 이동속도 정도에서 특성이 갈린다면 추가 캐릭터는 상점 가격이 할인이 된다든지 협공 시 추가 데미지를 줄 수 있다든지 하는 정도다.


스튜디오 경영 측면에서도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청중을 모아야, 그러니까 시청률을 끌어 올려야 자금과 팬이 늘어나고 팬이 늘어나면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도할 수 있다. 아이템 제작도 소소한 재미를 안겨 준다. 어째 카이로 소프트 게임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고.


스토리는 단순하고 뻔할 정도지만 나름 반전도 있는데다 아이언맨, 스폰지밥 등등 패러디된 적들이 귀엽게 나와서 다음 에피소드를 기대하면서 진행했다. 내 인내심을 시험한 건 스토리가 아니라 오히려 종종 등장하는 버그들. 보스의 스프라이트가 고정되어 행동하는 건 그렇다치고 후반부에 문을 부순 순간 진행이 안돼서 미션 전체를 재시작했으니... 문을 협공으로 날려버렸더니 에러가 생긴 모양. 멀티 엔딩이라고는 하는데 아직 2회차를 안 해 봐서 모르겠다. 





타이틀 및 엔딩크레딧에 일본어 노래가 흘러 나오는데 정작 제작자에는 일본인이 별로 없다. 제대로 오마주하려고 마음 먹었구나, 비홀드. 직접적인 욱일기 묘사는 안 보여서 다행이다. 전범기까지 갖다 쓸 필요는 없겠지.


게임이 모바일로 나오면 대박일 텐데. SRPG라서 급한 조작을 요하지도 않고 세밀한 조작도 필요없으니 딱이네. 어차피 제작사도 PC 외에 다른 기기 출시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아니라 태블릿에서만 진행할 듯하다.


8비트에 전대물, 거기다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게임이라니. 후레시맨 비디오를 빌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아 변신 모션을 따라하던 어릴 적이 생각난다. 이런, 나 같은 사람을 딱 노려서 만들었잖아. 모두 자신만의 특수전대를 만들어서 지구를 지키자.


WRITTEN BY
_클로버
무색의 녹색 생각들이 맹렬하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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