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왔으니 기분전환 겸 해서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전시회 하나만 일정에 넣기는 심심해서 간단하게 동선을 짰다. 걷는 건 싫어하지 않지만 왠지 짐이 많아서 동선을 급하게 줄였다.


우선 처음으로 간 곳은 을지로3가 삼일교 부근에 있는 베를린 장벽.



실제 베를린 장벽 중 일부가 서울시에 기증되었다. 평화의 기운이 우리나라에도 널리 퍼지기를.


공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나무도 있고 벤치도 있어서 기능만큼은 알차다.


베를린 장벽에서 이것저것 찍어보다가 이젠 광화문으로 출발. 가다가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길래 잠시 들려서 책 좀 샀다. 내가 보는 코너는 거의 정해져 있다.


인테리어 ▶ 요리 ▶ 미술/사진 ▶ 시 ▶ 소설 ▶ 인문학


관심 있는 순서라기보다는 남이 먼저 사 버릴 것 같은 내 나름대로의 순서다. 그래봤자 별 의미는 없지만. 알라딘에 오면 책이 저렴하다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과소비를 하곤 한다.


종로에서 광화문, 정확히는 경복궁 부근을 가다보면 높은 확률로 인사동을 지나치게 된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외국인도 많았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외국인이었어도 한국을 방문하면 인사동을 들렀을 듯.


인사동을 나와 이젠 곧장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아갔다. 그러고 보니 외관을 안 찍었다. 관람료는 4천 원. 무인발권기가 있어서 무척 편했다. 앞으로는 이런 전시관이 많이 늘겠지. 보관함도 많아서 가벼운 어깨로 전시장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미술관에서 지켜야할 매너를 스스로 쓰고 '전시'해 보도록 유도했다. 미술관에서는 만지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 전시된 작품만 구경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욕구를 해소하도록 만드니 참여도가 높을 수밖에. 어린 아이들에게도 효과가 좋을 것 같다. 근데 지금은 다들 킹스맨만 보고 왔는지 저 문구가 대유행이다.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의 모티브가 된 《대척점의 항구》. 공중에 떠 있는 작품이지만 배 아랫부분은 수면에 반사된 것처럼 형태가 일그러져 있다.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의 시리즈를 위해 레안드로 에를리치가 참여했다.



본격적인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 이건 1층에서 본 모습. 수면이라고 판단되는 배 아랫부분을 잘 보면 울타리나 가로등까지 표현되어 있다.



이건 지하 1층에서 본 모습. 들어가려면 신발에 덧신을 신어야 한다. 돌아다니느라 다리가 조금 아팠는데 편하게 앉아서 쉴 수 있기도 했고, 전시물을 아래에서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가위눌림_자본주의적 건설과 파괴의 딜레마》라는 강영민 작가의 작품.


작품이 되게 크다. 더욱 가까이서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 작년 홍대 졸업전시회에서 비슷한 콜라주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여러 재료가 뭉치면서 발산하는 에너지가 자체가 주 목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유추해 볼 수 있는 메시지가 있어서 생각하며 오래 보게 됐다.



(죄책감 속에서도) 자극적인 게임은 새벽 3시까지 이어지고


이걸 보면 딱히 유산계급을 비판하기 보다는 사회 전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주력한 것 같다. 어쩌면 키치에 집중해서 중심 메시지가 애매해진 것 같기도 하고...



《리미널 에어 - 디센드(공기층 하강)》이라는 작품인데 일본의 오마키 신지 작가가 만들었다.


발이 가득찬 터널 같은 느낌이었는데 발들을 헤치고 끝까지 가면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벽이 나온다. 형용할 수 없는 숭고미...가 느껴지긴 하는데 오히려 발들을 헤치며 도달할 때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 애 쓴 기억이 더 강렬하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 때려 넣으면 사고날 위험이 있으니 동시 입장 인원수를 제한하다보니 자연스레 놀이공원처럼 대기줄이 생긴 모양. 발 같은 것이 흰 밧줄 같은 거라서 화장이 작품에 묻을까봐 입장할 때 마스크를 준다. 처음에는 밧줄에서 나오는 미세 먼지를 마시지 말라고 마스크를 주는 줄로만 알았는데. 뭐 의도가 어쨌든 마스크를 쓰니 미세먼지로부터 저항력이 +50 된 기분이었다.



디센드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관람객들.


일찍 가서 다행이었다. 위는 로스 매닝의 《스펙트라》. 전기 관련한 일을 하다가 작가로 변신한 사람인데 그래서 그런지 작품이 현실감 있게 재미있다. 천장에서 형광등이 색깔마다 회전하는데 회전하는 원동력이 형광등 끝에 달린 선풍기(...)이다.



로봇에 관한 전시회를 보다보면 설문조사를 할 수 있는데 그 설문조사 결과가 종합되어 나온 것.


전시회를 보면서 기억나는 단어를 적을 수 있는데 그것이 이런 식으로 구조화 된 것. 오른 편에는 신체 일부분이 영어로 쓰여 있고 퍼센테이지가 붙어 있다. 이것은 '자신의 몸 일부분을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어느 부위를 하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 개인적으로 조금 놀랐다. 1위가 뇌라니. 나는 가슴 및 심장을 택했다. 뇌는 인간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생각하는 것을 그만 두고 싶을 수도 있겠지. 정확한 이유는 각자가 알고 있을 듯.




관람을 마치고 나와서 잠시 광화문에 들렀다. 어차피 근처였으니 별 부담없이. 그러고 보니 이번 달에는 부처님 오신 날이 있다. 연등행사가 무형문화재라는 사실에 잠시 감탄했다. 너무 당연해서 무형문화재까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의외였다.


그리고는 집에 귀가. 원래 같으면 편의점에 들이닥쳐서 맥주 한 캔을 사거나 아무 바에나 들어가 술 한 잔 마시고 집에 갔을 텐데 요새는 절주 기간이라 맹물로 입술만 적셨다.




전시회에서는 캡차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기계는 읽지 못하고 인간만 읽을 수 있는 말이라니. 갑자기 터미테이터가 오버랩되면서 손 글씨가 고도의 암호문이 된다는 상상을 잠깐했다. 후후 멍청한 기계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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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_클로버
무색의 녹색 생각들이 맹렬하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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