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제목은 Requiem for a Dream(꿈을 위한 진혼곡)으로, 휴버트 셀비 주니어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약중독자 4명의 삶이 파괴되는 모습을 필름에 담아냈는데 10년 전 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상미가 뛰어나다. 미국에서도 높은 선정성에 말이 많았는데 나도 좀 충격이었다. 난 원래 심슨에서 이 영화를 패러디했기 때문에 본 거였는데... 이렇게 추가 가득한 영화일 줄이야... 물론 미만 옳은 것은 아니지만.

핸드헬드나 허리, 등에 카메라를 메고 1인칭에 근접한 3인칭으로 배우를 찍는 모습은 게임으로 하면 TPS 게임 장르에서나 볼 법한 카메라 워킹이라고 할 수 있다. 허리에 카메라를 달고 찍는 영상은, 우리나라에서는 비스트의 'SHOCK'나 박명수의 'FYAH' 뮤비에서 볼 수 있다. 우울하고 피폐한 얼굴을 한 인물을 잘 표현하다 못해 마음까지 들여다 보는 기분이다.
화면 분할 기법도 눈에 띤다. 첫 장면인 엄마와 아들부터 시작해서 연애 중인 남자와 여자, 엄마와 냉장고 등 TV 단막극에서 전화할 때만 쓰이는 화면 분할과는 다른 미장센을 만들었다. 특히 연인이 같이 누워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말하는 장면에서도 화면 분할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둘의 감정 상태를 감각적이고 세밀하고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조명 역시 미장센의 일부. 네 명의 등장인물 모두 약에 손 대기 전이나 손 댄 초반부에는 영화 분위기가 화사하고 심지어 태양도 등장한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 수록 파란색 등으로 색온도가 높고 차가워지며 색깔을 명확하게 인지하기도 힘들어진다. 이건 뭐 대놓고 시체안치소의 조명을 따라한 것도 아니고.

주인공(30 seconds to mars의 리드 보컬 '자레드 레토'!), 주인공의 친구, 주인공의 여자친구, 주인공의 어머니까지 약에 중독되어 각기 다른 최후를 맞이하는데 그 결과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심각해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불쾌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그야말로 인간이 이렇게까지 더럽혀질 수 있구나. 마지막에 4명이 모두 태아의 자세로 구부리면서 영화는 끝난다. 나는 그 장면에서 약을 끊고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었으나 제니퍼 코넬리가 몸을 팔고 받아온 것이 돈이 아니라 마약이라는 점에서 그런 해석은 못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태어난 것부터 죄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이들이 이런 결과를 맞이했지만 이들은 그저 욕망이나 본능의 목소리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것... '마약을 하지 말자'라는 단순한 메시지는 차라리 30초짜리 공익광고가 낫겠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주의해야할 것은 마약이나 다이어트, 성공에 대한 욕망말고도 많다.

아래는 영화에서 마약 장면을 모아놓은 영상이다. 비슷한 길이의 영화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컷들로 영화를 표현했는데 스틸 사진이나 글로는 표현하기 부족해서 그냥 이렇게 동영상을 올린다. 제니퍼 코넬리의 헤어누드(...)가 짧은 시간 동안 나오니 옆에 미성년 아동이 있거나 기타 곤란한 상황에 있을 경우에는 20초 이전의 영상을 보지 않기를 권한다.(그냥 켜면 20초 이후부터 진행되니 다시 보기를 하지 않으면 문제 없다.)






레퀴엠 (2002)

Requiem for a Dream 
8.6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출연
엘렌 버스틴, 자레드 레토, 제니퍼 코넬리, 마론 웨이언스, 크리스토퍼 맥도널드
정보
드라마 | 미국 | 100 분 | 200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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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_클로버
무색의 녹색 생각들이 맹렬하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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