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 실제 프로필보다 잘생기게 그려진 것 같은 일러스트...



1.

간만의 책 리뷰. 그것도 시집이다. 시라는 것은 일면 금성탕지에 있는, 그것도 하늘성의, 보물처럼 느껴진다. 소설보다 분량도 짧은데 어째서 소설보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걸까. 짱나게.


시라는 건 모르겠다. 내가 무식하게 이해하는 방식으로 시라는 것은, 단순하게 개인이 하고 싶은 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렇게 유치하게 의미짓는 일도 재수할 때야 가능해졌다. 그 전까지는 자아의 세계화라는 것이 시라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수능에서 시를 분석하는 방법은 대립쌍을 이용한 구조주의와 미리 암기된 이미지 혹은 음상을 이용한 형식주의 두 가지에 불과했다. 그것은, 현실에서도 그 이미지가 불쾌한 인상을 주었다면 하강적 이미지, 유쾌했다면 상승적 이미지로써 판단하고 이를 이용하여 작가의 심정을 유추하는 방식이다. 역사주의적 비평방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인의 개인 역사와 시대상황에 대한 지문이 필수로 제시되어야 했기 때문에 많지는 않았다. 그 사람에 대해 공부할 수 있어 비로소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시인은 고작해야 윤동주나 이육사 정도였다. 뭐어, 역사주의적 비평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일단 시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면 좋잖아. 어떤 사람의 감정이 담긴 이야기를 그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형식 그대로 듣는 법을 배우는 것이 곧 시를 배우는 것이며, 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말하기 방식이 나와 조금 다르더라도 그 속에 담긴 진실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너와 나의 말하기 방식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으며, 너만의 언어가 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뿐이다라든지. 물론 그것을 세련되게 말하면 더욱 강렬한 인상이 나에게 남겨진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야.

혹시 시를 이해하지 못 했다고 해서 마음 쓸 일은 없는 듯하다. 우리가 자신과 맞는 친구와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듯 나에게 맞는 시를 찾으면 되는 일이다. 소설이나 음식, 롤러코스터 같은 것은 그렇게 하면서 시는 그러지 않을 이유는 없다. 어차피 시인은 배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 종류보다 많다. 시인과 공유하는 감정이나 사건이 있다면 자연스레 시를 이해하게 된다. 이건 진짜 확실하다. 일단 나는 그랬다.



2.

나의 첫 시집은 임후성 시인의 《그런 의미에서》이다. 재수 시절 언어 부문을 가르쳐 주셨던 동명의 선생님에게 감명을 받을 당시였다. 지금은 닫아버린 싸이월드에 그것에 대한 내용을 적어서 자세한 내용은 생략. 아무튼 간에 그 선생님이 시인이라는 소문이 파다해서 나는 그 소문을 들은 즉시 잠실 교보문고로 달려가 그 선생님의 이름으로 된 시집을 한 권 샀다. 생애 첫 시집을 사고 그것을 밤새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잠자는 시간도 줄여야만 했다. 다음날 수업이 시작할 때 선생님께 사인을 받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책을 내밀었을 때 선생님은 사인은 하지 않고 이상한 얘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제가 쓴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의 시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이 사람이 저랑 좀 닮게 생겨서 그런가, 가끔 이렇게 저한테 사인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시집을 산 당시에는 시집에 들어 있는 내용이 죄다 빛나고 소금같았는데 그 말을 듣고 난 다음 쉬는 시간에 펼친 시집 안에는 이제 그냥 말라 굳어버린 잉크만이 담겨있을 뿐이었다. 콩깍지는 그렇게 내 첫 시집부터 벗겨졌다. 그러나 시집을 사는 버릇이 생긴 것은 그때부터였다.


두 번째 시집은 기형도였다. 기형도 시집에 대해서는 굳이 적지 않겠다. 참고로, 기형도 시인의 《입속의 검은 잎》 몇몇 페이지가 너덜너덜해져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3.

최근에 산 시집은 총 6권이다. 매년 10월 홍대 주차장 부근에서 개최되는 와우북페스티벌마다 참석하는데, 이번에는 문지 시집이 권당 1,500원이라 사지 않을 수 없었다. 6권을 사도 9,000원이라니. 너무 저렴해서 시집을 산다는 것만으로도 지옥에 떨어질 것 같다.


마종기 시인은 서울대 출신의 의사이자 시인이다. 1939년 출생으로 연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을 수료, 일본에서 유학한 학구열 높은 인재인데 시까지 쓴다. 엄친아 끝판왕인 셈.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청년기, 중년기를 해외에서 보내서 그런지 그의 시에는 회귀나 혼란에 대한 키워드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타향생활을 오래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의 시에 대해 큰 공감을 할지도.

내가 감명받은 내용이 회귀에 관련된 내용은 아니다. 이 시인의 통찰력은 외로움 혹은 소외, 주변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에도 빛나는데, 그 일부만 인용을 해 본다.


(...) 이름까지 감추고 모두 혼자가 되었다.//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 〈이름 부르기〉일부.


(...) 아주 작은 날벌레가 어디서 날아와 읽던 책장에 앉았다. 나는 책을 잽싸게 닫아 날벌레를 죽였다. (...) 이 날벌레도 이름은 있었겠지. (...) 세상에는 팔팔하던 몸이 죽어 겨우 검은 점 하나로 남는 생명이 많다. 나도 그럴까. 그러니 함부로 슬퍼하지도 울지도 말 것. 눈물 한 방울에 시신이 완전히 씻길 수도 있다. ― 〈검은 점의 장례〉 일부.


당신의 골수를 열 달이나 받아먹고//어머니, 내가 생겨났습니다. ― 〈골다공증〉 일부.


천 년을 산 나비 한 마리가//내 손에 지친 몸을 앉힌다.//천 년 전 앙코르와트에서//내 손이 바로 꽃이었다는 것을//나비는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 〈캄보디아 저녁 1〉 일부.



시인이 의사라서 그런지 신체나 장기 등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가끔 등장한다. 〈골다공증〉과 같은 부분은 요새 유행하는 관용어인 '부모 등골 빼먹기'와 오버랩이 되기는 하지만 저 시에서 시종일관 진지한 표현을 듣고 있다가 보면 텔레비전 드라마에 깔깔대는 어머니에게도 괜시리 죄송스러워진다. 아니 근데 어머니, 막장 드라마는 보기 싫으시다면서 아들 밥도 안 해주신 채 어째서 매일매일 챙겨보시는 겁니까.


WRITTEN BY
_클로버
무색의 녹색 생각들이 맹렬하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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